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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째 드림 전력 주제 '본심'

 

유희왕 DM/카이바 세토 드림

written by. kaseyana

 

* 신극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폭발음과 뒤엉켜있던 인외의 형태를 한 홀로그램이 소리 없이 흩어지는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최신식 기술을 집약시킨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란 이 정도로 극단적인 건가 싶었다그 정도로 아무런 흔적조차 없었고팔에 감긴 듀얼 디스크는 무게가 있다기엔 어딘가 어폐가 있었다처음 이 듀얼 디스크를 착용했을 때 느꼈던 감각은 아직까지 건재하다.

듀얼이 끝났는데도 조금의 미동도 없다그렇게 생각할 쯤에 상대는 거리를 좁혔다. 그 일련의 과정이 끝나면 카이바는 이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가만히아주 가만히.

 

 

나는 명계로 갈 거다.”

 

 

갑작스러운 호흡에는 그 어떠한 간격도 존재하지 않았다나는이상하게도 그 두 음절에 힘이 들어간 기분이 든다고개를 들면 시야가 가득 차있었다팔을 뻗으면 간신히 이마에 닿을 정도의 간극이 있음에도 시선이 맞닿는 거리는 거의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다채도 낮은 푸른 안구 안쪽을 들여다보며 거기에 어떤 대답이 어울릴지에 대해서 생각한다그래라든가 그렇구나 같은간단하면서도 한없이 연약한 언어들에 대해.

새삼스럽다기엔 어디 한 구석이 빠진 기분이 들었다어느 쪽이냐면이미 어째서라는 질문은 필요가 없을 정도의 기분이었다답은 알고 있다이유도목적도너라면 그러겠지같은 아주 당연한 이해가 동반되는 감각.

 

그래벌어진 입술이 천천히 문장을 떨어트린다그러면 카이바는 조금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의아하다고 해야 할지어딘가 불만인 것 같기도 한 애매한 경계는 도리어 이쪽이 의문을 갖게 만든다카이바와 줄곧 마주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미세한 표정 차이들이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카이바는 의외로 불만스러운 표정을 자주 지었다그것도 최근 들어 익숙해지면서 읽을 수 있게 된 거지만.

 

 

말릴 줄 알았는데.”

말려주길 바랐어?”

 

 

설마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카이바는 타인에게 무언가를 바라면서까지 이런 식으로 돌려 말할 남자는 아니었다바란다면 바란다고 말한다원하지 않는다면 받아들이지 않는다누구보다 오만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높게 매기는 남자에게 타인 따위는 조금도 고려대상조차 아니었다. 적어도 저런 의도로 말했다면 가지 않을 가능성이 남아있어야 한다. 하지만 카이바의 선택지에는 그가 여태껏 걸어온 길처럼 단 한 가지 선택지 밖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뭘 말하든 간다는 거지거기까지 생각하자 손에서 미세하게 힘이 빠져나갔다카드패가 들려있었다면 조금 흐트러졌을 정도의 미세함.

 

 

네녀석 성격이라면 그럴 거라고 생각했거든.”

 

 

상대가 진심으로 죽길 바라는 게 아니고서야 명계로 간다는 사람을 말리지 않을 거라 여긴 게 더 신기하다. 심지어 카이바라면 이름부터 질색을 하는 죠노우치조차 미쳤냐면서 만류하리라 감히 확신할 수 있었다. 완전한 타인 대 타인의 관계라 이름 붙이기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모습을 봐온 데다가 애초 유키미 요루는 타인의 위험을 보고서 간단히 지나칠 수 없는 성정을 지니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명계라는 자체부터가 현실과 동떨어진 단어인데도 저걸 당연하게 말하고 있는 카이바나그걸 받아들이는 자신이나 제 3자 입장에서 보면 어느 쪽이든 정상으로 보이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그럼에도 저 말이 거짓이 아닌 건 누구보다 잘 알았다아이가미(디바)와의 일들이 끝난 후 얻은 큐브로 뭔가를 개발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고그건 비단 듀얼 몬스터즈만을 위해서라기엔 지나치게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형님은 아마… …그렇게 말끝을 흐트러뜨리던 모쿠바를 기억했다.

 

 

난 안 말려.”

 

 

시선이 따라붙는다굳이 거기에 응답해줄 필요는 없을 거 같았다요루는 카이바가 아템을 만나러 가는 것에 말릴 의지가 없었다정확히 말하자면 말려선 안된다고 느꼈다단순히 만나고 싶다거나얼굴을 보고 싶다거나 하는 문제였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그런 좀 더 간단한 문제였다면 대답을 고르기가 편했을 것이다하지만 카이바가 안고 있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다요루는 그걸 앞으로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테고이해라는 말조차 오만일 정도로 입에 담을 수 없었다카이바 세토라는 남자의 인생은 그런 거였다타인의 인생이란 그런 영역이었다그러니 단지 받아들일 뿐이다. 아직 못 다한 승부로 인해 과거에 얽매어 있다고 생각한다면그로 인해 미래로 나갈 수 없다면싸움 끝에 종착지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하지만 그 이후의 일은 별개의 문제다손에서 힘이 조금 더 빠져나갔다요루는 어째선지 카드패가 바닥으로 쏟아지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이제와 홀로그램에 지나지 않는 카드들은 실체조차 존재하지 않을 텐데도.

 

하지만 나는아까 전의 카이바처럼 그 두 음절에 힘을 줘본다나는시선은 여전히 이쪽으로 떨어졌다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마주칠 생각은 들지 않는다.

 

 

네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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