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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에이판 기반으로 써본 글...(인데 이제 원작을 봤기 때문에 원작 기반) 관련되는 편은 13화인 코쿠라노가 나오는 편. 요루는 거기서 아템이랑 처음으로 만났다.

기억이 없는데도 자신도 모르는 새에 뭔가가 벌어져있고 그 원인이 자신한테 있는 거 같으니까 당시 유우기 멘탈 상태는 장난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저 사실을 나중에 애들한테 털어놓을 때 표정도 두려움에 가득 차 있어서...혼자서 얼마나 끌어안고 지냈는지 생각하면 너무 짠해짐.......그나마 토에이판 수위는 원작보다 순화된 편이라고 들었고. 






믿음과 확신

w. kaseyana




요루.

그렇게 이름을 부르는 음성은 단지 누군가의 것을 흉내 내고 있을 뿐이라 어딘가 불길한 구석마저 있었다. 형편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 아이와 그 옆에서 이쪽을 보고 있는 남자 아이에게 시선을 준 끝에 천천히 문장을 골라낸다. 괜찮냐고 물어야할 상대가 따로 있었다는 걸 깨달은 심정은 생각보다 어이가 없었고, 그 어떤 문장을 끌어와도 정확한 표현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조금 당황한 표정이 머무른 얼굴과 희미하게 남은 화학 약품의 냄새를 겹쳐보고 있으면 문득 기묘한 기분이 되어버린다.

너는. 거기서 의도적으로 호흡을 끊는다. 정적이 소음을 내면 그 잠깐의 침묵 사이에 공기를 불어넣었다. 입을 열고, 숨을 토해낸다.

 

 

너는, 유우기가 아니지?”

 

 

같은 위치에서 마주치는 시선도, 귓가에 달라붙는 음성도, 어디 하나 무토오 유우기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알 수 있다. 그건 단지 감이나 단순 추측에 의존할 뿐인 결론이 아닌 확신에 가까운 물음이었다.

조금 커졌다가 되돌아오는 눈동자를 보며 문득 깨닫는다. 칠해진 안구는 늘 보던 보라색이 아니라 선명한 붉은빛을 띠고 있다는 걸. 손으로 꽉 쥐면 붉게 흘러나와 발치를 적실 것만 같은 색깔을 뒤집어쓰고 있다.

 

벌어진 입술이 문장을 떨어뜨린다. 그 과정을 보면서 가만히 생각했다. 줄곧 인식해왔던 인물을, 이제와 뭐라고 불러야 할지에 대해서.

 



방과 후 시간이 있냐고 물어온 유우기의 얼굴에는 이미 거절이라도 당한 것 같은 표정이 떠올라있었다. 나 아직 대답 안했잖아. 그렇게 가방을 챙겨 일어서면 그제야 본인이 무슨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은 거 같았다. 하지만 손가락만으로는 스스로의 표정을 읽어낼 수 없다. 손가락으로 더듬어지고 있는 유우기의 얼굴 위로 요루는 얼마 전의 그것을 겹쳐보다가, 보라색 안구가 이쪽을 향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채고 조금 난감해졌다. 자신만으로는 스스로의 표정을 알 수 없다. 그건 유우기를 보고 있던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 시간이 없다면, 거절해도,”

아직 대답 안했다고 했잖아.”

 

 

멋대로 결론 내리는 거 아냐. 약간의 간격 끝에 사과가 덧붙여졌다. 미안해. 특별히 사과를 바라고 내뱉은 말은 아니다. 유우기는 상냥하지만 그만큼 소심한 구석이 있어서 별 거 아닌 일에도 본인이 심하게 잘못한 것처럼 굴고는 했다. 간단히 상처 받는 주제에 그 반대의 상황은 거부한다. 결국 상냥함으로 귀결되는 성정이란 이 얼마나 모순되는지. 아마 하교 후 시간이 있냐고 물어본 것도, 며칠 전부터 계속 표정이 좋지 않았던 것도, 전부 근간은 같은 이유일 것이다. 따로 상담하고 싶은 게 있다고 늘어놓는 음성은 놀라울 정도로 기가 죽어있었다.

 

 

되도록이면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 하고 싶은데, 괜찮아?”

그럼 버거 월드 가자.”

 

 

? 얼빠진 소리가 굴러 떨어지는 걸 못 본 체하고 반을 나선다.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유우기는 끝까지 따라오고 있었다. 버거 월드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라든가, 시끄럽잖아, 같은 당연한 말들을 발치로 쏟으면서 입을 여는 순간마다 망설인다. 그 말들에 단지 요루는 한 박자 늦게 그러네, 그렇게 세 음절을 이어 붙였다.

메뉴가 나오고 점원이 돌아갈 때까지도 유우기는 음식에 손도 대지 않았다. 입맛이 없어서. 그렇게 어물어물 말하긴 했지만 원래 시킬 생각조차 없었다는 걸 요루는 알고 있다. 유우기가 원한 건 대화를 조용히 나눌 수 있는 장소였지 화제도, 풍경도 정신없이 바뀌는 이런 공간이 아니었다. 그 정도쯤이야, 안다. 세트 메뉴에 버거 하나를 더 추가한 쟁반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요루는 빨대를 입에 물었다. 그러면 그 일련의 과정을 따라오는 시선이 있다.

 

내 말 알아들은 거, 맞지? 그 위로 탄산 소리가 겹쳤다. 목 안 쪽에서 터지는 기포는 꼭 음성이 터지는 소리처럼 내벽을 타고 기어올랐다.

 

 

유우기. 굳이 내가 아니었어도 되잖아.”

?”

상담역.”

 

 

어째서야?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었던 불만을 떠올린다. 넌 좀 더 상냥하게 말하는 편이 좋아. 타인의 기준에 맞출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그 이전에 의도적인 상냥함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무리 정교하게 흉내 내도 닿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며칠 전의 그것은 그 사실을 증명하듯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지금 눈앞의 소년과 같은 얼굴과, 같은 음성과, 닮은 발음으로.

그건 꼭 인간인 체 하는 무언가 같아서.

 

침묵은 있었지만 정적은 없었다. 무슨 대화가 오가도 이 소음은 계속 될 것이다. 유우기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처럼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곧 토해내듯 호흡 대신 언어들이 쌓였다.

 

 

요루라면, 아무렇지 않게 여겨줄 거 같았어.”

 

 

나조차도 확신하지 못하는 내 말을. 의심하고 매도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질 법한 이 허황된 것들을. 사실은 그래주길 바랐는지도 모르고, 그러길 바라는 것조차 오만이겠지만, 그럼에도 유우기는 간절했다.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게 다르듯이, 믿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에게 털어놓는다면 그들은 전부 믿어줄 것이다. 믿는다고, 해줄 것이다. 하지만 맨 처음에 돌아올 반응에 대한 확신이 유우기에게는 없었다. 사소한 의심과 의문마저 견뎌낼 만큼의 용기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스스로조차 믿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매달릴 수 있던 상대는 요루였다.

요루는 유우기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아주 가만히. 며칠 전 그랬던 것처럼. 보라색이 머무른 안구 안쪽에는 어떤 게 존재할지 문득 궁금해진다. 적어도 꽉 쥐어짠 끝에 발치를 적실 붉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시끄러운 곳으로 온 이유는, 네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문장 끝에 의아한 시선이 닿았다. 요루는 여전히 버거에 손을 대지 않은 채 다시 빨대를 입술 끝으로 물었다. 콜라 한 모금 정도의 침묵이 흘렀다.

 

 

이 가게에서 누가 어떤 얘기를 하는지 아무도 모르고, 들리지도 않아. 시끄럽거든.”

 

 

네가 가려고 했던 카페는 조용해서 다 들리지만. 그렇게 덧붙여지면 유우기의 몸이 한순간 떨렸다. 가뜩이나 작은 어깨는 움츠러드니 더 어린애같이 보인다. 미안해. 그렇게 나온 음성은 끝이 애매하게 뭉개져 있었다. 그러면 요루는 고개를 천천히 내젓는다. 네가 말할 건 그게 아니잖아.

들여다보듯이 눈을 마주친다. 유우기, 날 봐. 이번에는 유우기도 이쪽을 똑바로 바라봤다. 색이 서로 다른 안구 표면에는 상대방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결코 멎을 리 없는 소음 속에서 일정거리의 간격 뒤에 말해본다. 네가 말할 건… ….

 

자꾸 기억이 사라져. 처음으로 나온 문장의 시작은 그랬다. 비록 주어가 일부 상실된 상태였지만 적어도 요루는 그것만으로도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안쪽에 고여 있던 걸 전부 게워내고 싶은 것처럼 유우기는 몸을 덜덜 떨면서도 말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멈추는 순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울 것같이도 보였다. 문득 깨어나 보면 시간은 흘러있지만 그 사이의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알던 것들이 변해있었다. 누군가가 의식불명이 되고, 누군가는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건 마치 내가 한 일 같아서. 두렵다, .

또 하나의 내가 있는 거 같아. 그건 분명 완전한 문장이었는데도 군데군데 물기가 묻어났다.

 

 

역시, 못 믿겠지?”

 

 

그건 꼭 믿어달라는 말처럼 들린다. 요루는 반복되는 불안정한 호흡에서 절실함을 읽었다. 뭐라고 답해야 좋을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믿는다고 한다면 과연 유우기는 온전히 안심을 할까. 모든 고민과 불안감이 해소된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단지 믿는다는 말 한마디로는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부족했다.

천년 퍼즐이 맞춰졌을 때부터 줄곧 봐왔던 존재를 정말 유우기라고 할 수 있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등만 보이는 상태의 그것은 유우기의 모습을 베껴낸 것처럼 그 자리에 존재했지만 단 한 번도 이쪽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지 않고 며칠 전의 그것을 마주했어도, 착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유우기라면 쓰러져있는 사람을 못 본 척 하고 있을 리 없을 테니까. 아무리 흉내 내도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친구들에겐 비밀로 해줘. 정적 속에서 얽혔던 목소리를 떠올린다. 부탁이야. ‘그것은 그렇게 말하면서 조금 난감한 표정을 이끌어냈다.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 요루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불쾌한 감각은 있었다. 멋대로 친구라고 발음하는 그 음성은 꼭 유우기의 것을 전부 흉내 내고 있는 거 같아서, 인간인 체 하는 인외의 형태 같아서. 적어도 그 불길한 감각을 도저히 친구라고 여길 수 없을 거 같았다.

 

 

다음번에 네가 또 다른 네가 된다 해도

 

 

그게 네가 아니라고는 결코 말할 수가 없다. ‘그것과의 약속 때문이 아니었다. 유우기가 믿고 있는 불안감의 근간이 무너져 내린다면 그곳을 채울 건 안도가 아니라 또 다른 공포일 거 같았다. 아무리 네 탓이 아니라고 해도 자책과 상처가 반복되는 결과물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신 반복해서 이름을 부른다. 타인의 마음에 닿기 위한 간단하고도 가장 연약한 언어.

유우기.

 

숨을 잠시 멈춘다. 그 사이에는 참 많은 것들이 지나갔다. 소음과, 침묵과… ….

 

 

나는 언제나 네 편이야.”

 

 

그건 질문에 대한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지만, 누군가에게 확신을 주기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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