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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리본이 요루한테 하는 대사가 떠올라버려서...그 대사하는 게 너무 보고싶어서 충동적으로 써버렸다. 첫 가히리 드림 연성...

시점은 고쿠요 전 이후, 그리고 그 후에 요루가 마음을 완전히 열고 나미모리 3인방과 리본에게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해준 때. 글의 시점은 그 날 밤인데 나름대로 종말의 세라프 세계에서 트립한 부분은 잘 드러나지 않게 썼...다고 생각한다....어느정도 서술은 되어있지만. 트립한 시기는 고쿠요 전이 시작되기 얼마 전쯤으로 생각해두고 있다. 제목 표기를 어떻게 해야할까 난감해서 우선은 그냥 이름끼리 붙여놓았음. (미래에선 언젠가 썸은 타겠지)

우선적으로 리본은 저 때부터 요루의 변화나 성장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츠나도 일조를 했지만 미래편 쯤에 그게 더 두드러질 거 같다. 여담으로 3개월 반만에 쓰는 글.........(처참)


읽으시는 분들은 장르→장르 트립 요소에 주의해주세요.




Night and night

w. kaseyana



해가 가장 높은 곳에 떠있을 때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하늘을 전부 불태워버려도 좋을 정도의 주홍빛이 창문에 머물고 나서야 마침표를 찍었다. 단순한 셈으로 환산하자면 긴 시간이었고, 한 사람의 인생을 일부로나마 헤아리기엔 짧은 순간이었다.

중간 중간 츠나요시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결코 완전한 언어가 되진 못했다. 고쿠데라는 입을 열지 않았는데도 이미 뭔가를 잔뜩 토해낸 듯한 얼굴이었다. 야마모토는 어딘가 애매한 눈으로 가만히 시선을 마주쳐왔다. 그건 꼭 안구 안쪽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기분이 들어서, 단지 입 끝만 올려 웃는 표정을 이끌어내는 것밖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분명 이 세계는 단 한 번도 스러진 적 없는 곳일 텐데도, 한 번 멸망을 겪었던 세계와 같은 밤하늘을 간직하고 있다는 게 조금 기묘하게 여겨졌다. 아무리 발밑으로 전부 부서져 내렸던 세계였을지라도 결코 그 전과 같이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걸 알아왔고, 이제와 부정할 생각도 없었으며, 그러니까 더더욱 소중하게 여겨야 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그저 막연하던 믿음과 선명하기 짝이 없는 이상으로 이루어졌던 신념을 반전된 것만 같은 다른 세계에서 온전히 실감하게 된 건 역시 상처로밖에 다가오지 못한다.

 


잠이 오지 않는 건가?”

 


종류야 달랐지만 어찌됐든 표정 변화가 있었던 세 명과 다르게 리본의 얼굴은 고정된 표정이 언제까지고 머물렀던 걸 기억한다. 딱히 어떠한 반응을 바라고 이야기를 털어놓은 건 아니었다. 이 시간이 되기까지 그 셋은 평범한 감정들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진심이라든가, 이를테면 상냥함 같은 것들. 세계가 어떻게 되든 결코 변하지 않는 것들. 사람의 마음에 닿기까지 가장 연약하면서도 한없이 다정한 말들을.

사람의 진심에 닿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진심이 필요하다는 걸 그 셋은 알고 있었다. 아니… …, 한 명은 조금 예외로 둘까. 단지, 이 새카맣게 물든 눈동자는 이 안쪽을 헤집는 감각이 건재해서 무슨 얼굴로 마주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꼭 들여다보는 것처럼 여겨졌던 야마모토와는 그 궤를 달리한 탓에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 쪽으로 시선이 가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배고파서 그래. 저녁을 세 그릇이나 먹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거 같다만. 한참 아래서 들리던 음성은 순식간에 창가로 자리를 옮겼다. 열을 내서 반박할 정도로 의미 있는 대화는 아니지만 착각 받고 사는 건 또 별개의 이야기다.

 


두 그릇이거든.”

이것 참, 실례했군.”

 


전혀 미안해보이지 않는 웃는 얼굴로 미안한 흉내를 내는 이탈리아 신사 따위는 들어보지 못했다. 어림잡아도 5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외형에서 나오는 말들이란 잘 정제되어있는 데다가 성인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할 정도의 수준이라 무구한 어린 아이들을 향한 기만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애초 처음부터 진짜 어린 아이일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실수인 척 손으로 조금만 건드린다면 금방이라도 균형을 잃을 창가 끄트머리에서 리본은 서있었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그 의도를 눈치 챌 걸 진작 알고 있다. 설령 떨어진다 해도 목숨을 잃는 불상사 같은 건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도. 그런 불가해한 확신을 주는 존재였다.

더 궁금한 게 있어? 정적이 공기 안쪽으로 침몰하는 소리 위로 음성이 겹쳐졌다. 그러면 단지 리본은 새카만 안구를 가만히 마주쳐왔다. 높이의 간극은 그 눈동자의 색과 같은 공기로 채색된 끝에 이윽고 빈틈없이 메워질 것이다.

 


궁금해 했던 건 다 말해준 걸로 아는데.”

 


물론 어떤 것들을 궁금해 했는지 직접적으로 일일이 나열한 적은 없다. 배려에는 능숙하지만 속마음을 숨기는 건 전혀 특기가 아닌 츠나요시야 문장의 반절정도를 두서없이 입 밖에 낸 뒤 사과를 건넨 적은 있었지만, 그건 질문이 아니다. 하지만 요루는 알 수 있었다. 그건 단지 추측에 의존할 뿐인 결론이 아닌 확신에 가까운 믿음이었다. 전조 없이 어느 순간 나타난 낯선 인간이 반복되는 말과 함께 전혀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다면, 당연히 알고 싶은 건 그 이유들과 살았던 세계의 이야기들일 거라고.

그리고 그걸 말해주는 게 진심에 응하는 법일 거라고.


그건 그랬지. 예상 외로 리본은 가볍게 긍정해왔다. 마치 박제된 것만 같은 표정은 어떠한 매도나 원망일지라도 아주 조금도 닿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요루는 리본이 뭔가 물어볼 게 있어서 찾아온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 대답이 별로 와 닿진 않았다. 이야기가 끝난 뒤 저마다의 반응이 있던 셋과 다르게 정적만이 선명한 리본의 눈길은 이쪽에 쭉 머물렀던 걸 기억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상대를 헤집는 것 마냥 배려도 없는, 일견 폭력적인 감각이었다.

 


확실히 기존에 가지고 있던 궁금증들은 다 풀렸다. 네가 어떤 세계에서 살았는지, 네가 누구인지.”

 


이곳에 오고 츠나요시의 집에서 지내는 동안 리본은 가장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로 한결같이 자신을 대했다. 전조도, 기척도 없이 방을 들락거렸고,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올 거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단조로운 어조로 말을 걸었다. 꼭 지금처럼. 애초 처음부터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을 대할 때 마냥 무지한 어린아이를 가장할 생각은 조금도 없던 것이다. 그저 말을 걸고, 대답을 듣고, 그 후에는 어느 순간엔가 사라졌다. 리본의 말은 타인의 안쪽을 정확히 더듬어내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 날이 반복될 때마다 체한 것만 같은 기분에 시달려야했다.

그럼에도 그 말들이 이 안쪽에 고스란히 쌓인 채 결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언젠가 들렸던 음성을 상기한다. 넌 그 녀석들의 진심을 받아들인 후 돌아간 스스로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것뿐이겠지. 수많은 시간과,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의 갈등 끝에 유키미 요루는 그 사실을 결국 인정했다.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았고, 제일 스스로가 최악이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던 형편없는 본심을

 


그런데, 뭐가 더 남았어?”

 


밤바람 소리가 귓가로 밀려왔다가 쓸려나갔다. 사실 바다라는 걸 실제로 본 적도 없지만 직접 눈앞에서 보게 되는 날이 오게 된다면 파도 소리란 이렇게 들릴까 싶었다. 그대로 풍경에 흠뻑 적신 듯한 색의 정장과 눈동자, 그리고… …, 음성. 문득 할 수만 있다면 검은 안구 안쪽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거기엔 어떤 풍경이 존재할까. 이 너머에도 지금과 같은 색의 하늘이 온전한 형태로 펼쳐져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예상 밖의 일이지만. 거기서 의도적으로 호흡을 끊는 걸 가만히 지켜본다. 정적이 소음을 내면 리본은 그 잠깐의 침묵 사이에 공기를 불어넣었다. 입을 열고, 숨을 토해낸다. 의외로 그 일련의 순간들은 사진을 찍는 과정처럼 섬세해서 시선 속에 아주 오래도록 남았다.

 


널 알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직접 마주한 웃는 얼굴은, 생각보다 훨씬 어른의 것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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